제 1 장 하나님에 대한 탐구
가장 근본적인 문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데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보기로 한다. 우리가 보아야 할 가장 첫 번째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먼저 우리는 성경 말씀을 몇 구절 보기로 하자.구약의
시편 제 14편 1절 상반절 :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이 구절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들의
결국은 하반절,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와 같다. 다시
신약의 히브리서 11장 6절의 중간 부분을 보기로 하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할지니라』.
세 부류의 사람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든
그리스도인이 아니든, 혹은 연구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든 우리는 지금 하나님에 대한
문제를 먼저 보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세
부류로 나뉘어진다. 그 한 부류는 무신론자(無神論者), 즉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또 한 부류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감히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또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우리와 같이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판결
과연 하나님은 있는가, 없는가? 여기에서
나는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곳을 하나의 법정으로 생각하고 이 문제를 판결하고
싶다 이제 여러분은 법관이 되고 나는 검사가 되기로 하자 법관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법관은 옳고 그름과, 있고 없음을 판결한다.
이제 검사는 증거가 될만한 것을
모두 찾아내고 이유 증거 등을 제시할 것이다. 그 후에 여러분이
판단하기 바란다. 그러나 한
가지 먼저 분명히 말해 둘 것은 검사는 누구나 범행을 직접 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사는 경찰이 아니다. 경찰은 사람이
무슨 일을 저지를 때, 직접 볼 수 있지만 검사는 어떤 일이든지 다
들어서 아는 것이다. 그가 들은 모든 증거와 이유를 법관 앞에
제시하고 법관에게 판결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도 이와 같다. 나는
내가 찾은 증거를 여러분 앞에 내놓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나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없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다만 내가 직접 간접으로 얻은 것들을
여러분에게 읽어 주고 보여 줄 것이니, 여러분 자신이 법관이 되어
과연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결하기 바란다. 나는 여기에서
사실과 증거와 이유를 제시할 것이다. 또 여기에는 증인도 있다.
증인을 한 사람 데려다가 그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를
증거하도록 하자. 또 한 증인을 데려다가 과연 그가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는지 없다고 말하는지를 들어 보자. 우리는 이러한 증인과 증거물을 본 후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결해야 할 것이다.
말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없다고 말한다. 당신은 먼저, 과연 그들에게
말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기 바란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그들이 과연 도덕적인가 부도덕적인가를 보기 전에는 그들의
이론을 들을 수 없다. 이론을 말하라고 한다면
살인 강도라도 이론을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론은 다
살인 강도의 이론이다. 만일 그들이 국가 사회의 대사(大事)를
논한다면 그 누구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말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행위로나 도덕적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일 때,
그들의 말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를
말하는 큰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도덕적이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
하는 사람들은-내가 아는 것이 비록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몇만 명은-내가 그들의 도덕적 상태를 솔직히
말한다면, 그들은 다 부도덕한 사람이다. 만일 당신이 무신론자가
도덕적인 예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려면
이미 죽은 사람 중에서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 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장래에는 내가 감히
말할 수 없을지 모르나 오늘은 말할 수 있다.
부도덕한 사람
언젠가 나는 금릉대학에서 집회를
하면서 『무신론자들은 모두 부도덕한 사람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금릉대학 안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학생를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불만을 가졌다. 이튿날 집회에도 그들은 참석했다. 그러나
내가 강단 위에서 말하고 있는 동안 그를은 아래에서 발로 마룻
바닥을 쿵쿵 울리며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셋러 날 그들은 또 와서
손가락질을 하고 입을 비쭉거리며 한면으로는 조롱하고 한면으로는
흔란케 했다. 넷째 날에는 학교와 교감(校監)인 위 염박사가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장소를 바꾸어서 말씀을 전하시오. 첫날 당신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부도덕한 사람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화가 났다오. 오늘 그들은 발도, 입도 아닌 주먹을
쓸 것이오. 듣자 하니 그들은 예배당 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당신을 때릴 작정이라 하오.』 그날 나는 그들이 정한대로 새로운
장소로 말씀을 전하러 갔다. 나는 많은 남녀 학생들 사이에 끼어서
함께 가고 있었는데. 가면서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비록 그들이 내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내 말을 또 듣고 싶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 중의 한 학생이 하는 말을 들었다 『니(Nee)선생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부도덕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옳은 말이야. 그들에게 도덕이 있다면 어떻게 강단 위에서
말을 하고 있는데 아래에서 발을 구를 수 있니? 어제는 집회
장소에서 어지럽게 하더니 오늘은 무력(武力)으로 하려고 한대.
정말 도덕이 없는사람이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사람은 참말
부도덕한사람이야 우리 말씀 들으러 가자1 그 사람들 상관말고 우리는 들으러 가자!』
언젠가 한 청년이 어느 전도인에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저는 중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는데 지금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믿지 않습니다. 』 오십여
세 가량 된 그 전도인은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보게,
오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 문제를
내겠네. 자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은 뒤로 자넨 도덕적으로
진보했는가? 자네가 무신론자가 된 후로 무신론자들이 자네를
도덕적으로 전보다 더 좋아지게 해 주고,자네 생각을 더 깨끗하게
해 주고, 자네 마음을 더 깨끗하게 해 주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청년은
얼굴을 붉히며 하나님을 믿지 않은 후로 도덕의 파탄(破綻)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 전도인은 말했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기를 바라는 것 같군.』
바라는 대로 판결할 수 없다
실지로는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들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만 없다면 그들이 여러가지 일을 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내 자신도
이랬었다. 학생 시절에 나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입으로는 강경하게 말했지만 내 속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가『하나님은 있다! 하나님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입으로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왜 그랬던가? 그것은 바로 죄 짓기
좋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입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해 두면 죄 짓는
곳에 더 잘 갈 수 있었고 그런 짓을 하는 데 담대할수 있었던 것이다.
전에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담대하지 못했고 감행(敢行)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없으니 큰 죄를 범할 수 있고 무슨 짓이든 감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어야 자기의 도덕이 높아지고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율법이 없기를 바라고, 도덕이 없기를 바라고,
규례(規例)가 없기를 바라는 사람이며, 인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도무지 말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당신에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위와 같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이 가장 큰가
어느 날 한 청년이 와서 내게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러므로 우주 가운데에는 오직 사람이 있을 뿐, 하나님은 없습니다!』라고 했다.
처음에 우리는 마주 앉았었다. 나는 그가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을 듣자마자
즉시 일어서서 저 편으로 갔다 마루 끝에서 그를 살펴보며 나는
말했다 『야, 자네 참 크군!』 나는 다시 한편으로 가서 그를 보며
말했다. 『아, 자네 정말 크네!』 나는 또 저
편에서 이 편으로 오며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자네 정말 크군!
자네같이 큰 사람이 강소성에 삼천만 명이나 있다니! 아, 자네 참
크네 그려! 자네같이 이렇게 큰 사람이
중국에 사 억이나 있다니! 자네 참 크군. 굉장히 커. 온 세계에
자네같이 이렇게 큰 사람이 이십 억이나 되는군! 요 며칠 동안
남변에 홍수가 나서 강이 넘칠 지경이라 위험하고 흥화성의
사람들이 다 위급한 상태에 빠져있지 않은가? 자네같은 사람들
이십만 명이 다 인부(人夫)가 되어 흙을 날라다가 뚝을 막는다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만일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부가 되어 태양에 구멍을 뚫고
긴 굴 을 파서 그 굴을 모든 사람으로
메꾼다면, 설령 그 사람들이 타 죽지 않는다 해도 그 이십 억의
사람이 다 그 안에 들어가서 태앙의 그 구멍을 메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 지구를 수백 개 태양 안에 넣고
태양을 흔들어 봐도 그 속에는 커다란 공간이 남을 걸세! 그 뿐인가?
이 우주에 태양 같은 별이 하나 뿐인가? 태양과 같은 별이 이 우주에 수천 억 개가 넘는다네.』
사람이 우주를 작게 볼 수
있는가
나는 다시 그 청년에게 말했다. 『자네,
참 큰 사람일세! 자네는 지구도 다 못 돌아 본 사람이면서 이 우주를
작게 보고 자신을 크다고 말하다니! 내 다시 자네에게 물어 보겠네,
자넨 이 우주가 얼마나 큰지 아는가? 빛으로 말하자면, 빛의 속도는
일 초에 삼십만 킬로미터로서 칠십 오만 리가 된다네 생각해 보게.
일 초에 칠십 오만 리(里)를 간다면
일 분 동안에는 얼마나 가겠는가? 한 시간에는 얼마나 가겠는가?
하루에는 얼마나 가겠는가? 또 일 년에는 얼마나
가겠는가? 이 우주의 허다한 별 중에서 그 빛이 삼천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지구에 도달하는 것이 있네 이것이 대체 어떤
거리인가 한번 계산해 보게. 각하는 정말 큰 사람일세 !』
그러므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
위와 같은 청년들에게 내가 알려주고 싶은 것은. 사람에게는
도덕적인 면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지식적으로나 학문적으로도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있는가
이번에 내가 개봉에 갔을 때 한
청년을 만났는데, 그도 이와 같이
하나님이 없다고 단호히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즉시 일어나서
그의 등을 치며, 『나는 오늘 하나님을 봤네.』라고 말했다 그는
이상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 보았다. 그는 내가 과연
어떻게 하나님을 보았는가를 알려는 것 같았다. 나는 말했다.
『자네가 바로 하나님일세. 자넨 하나님이 없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자네가 바로 하나님이야.』 그는 왜 그런가를 물었다. 나는 말했다.
『자네가 하나님이 없는 것을 안다면, 자낸 분명히 온 지구를 다
돌아다녀 봤겠군 상해에 하나님이 없으면 남경에는 하나님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자넨 상해에 가 봤을 뿐 아니라 분명히
남경에도 가 봤겠군 남경에 하나님이 없다면 천진에는 하나님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러니 자넨
남경에 가 봤을 뿐 아니라, 천진에도 분명 가봤을 거야. 중국에
하나님이 없다면 외국에는 하나님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자넨
외국도 다 다녀 봤겠군 하나님이 여기 없으면 저기에는 있을거야.
그러니 자넨 온 세계를 다 다녀 봤을 게 아닌가?
하나님은 혹시 북극에나 남극에 계실지, 밀림이나 광야에 계실지도
몰라 그럼 자낸 남극이나 북극에도 다 가봤을 것이고 밀림이나
광야에도 다 가봤겠군? 자넨 다 다니고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나님이 이 지구에 계시지
않는다면 혹시 달나라에는 계실지 몰라 그럼 자낸 달나라에도 가
봤겠군 혹시 하나님은 어떤 혹성에 계실지, 혹시 태양에 계실지도
몰라 그러니 자넨 모든 혹성과 태양에까지도 가봤을 거야. 그러니
자네라는 사람은 온 우주를 다 다닌 사람이요 다 본 사람이로군 그러니까 자네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자네가 바로 하나님 일세 그뿐인가? 오늘은 하나님이 상해에 계시지 않지만 어제는
하나님이 상해에 계셨을지 자네가 어떻게 아나? 또 내일은 계실지
어떻게 알아? 하나님이 작년에 계시지
않았으면 금년에는 거기 계실지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또 내년에는
계실런지 어떻게 알 수 있어? 자네가 금년 내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 일 천 년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니 자네라는
사람은 분명 불로장생하는 사람이요, 미래의 일까지도 다 아는
사람이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사람일세. 자넨 분명
오늘 천진에 있으면서 동시에 외국에도 있는 사람이요, 동에서부터
서에까지, 북극에서부터 남극에까지 없는 곳이 없는 사람일세
그러니 난 다른 데 가서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겠어. 각하가 바로
하나님이야.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넨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자격이 없으니 입 다물어야 해!』
와서 증거를 보라
『나는 모른다. 나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친구여, 만일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믿을만한,
확실하고 타당성 있는 증인을 불러와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려 주도록 하겠다 당신은 법관이 되고 나는 검사가 되어,
내가 증거를 가져와 당신에게 보여줄테니 과연 하나님이 있는가
없는가를 당신 자신이 생각해 보라!
먼저 우주를 보라
첫째로, 당신은 먼저 밖을 보라 우리의
바깥에 있는 대자연과 그 모든 것의 현상(現想)을 보라. 무엇이
과학인가? 무엇이 학문인가? 당신이
한 가지 현상을 보고 해석할 때, 그것이 바로 학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환자의 열이 떨어지는 것을 볼 때, 그의 열이
떨어지는 것은 하나의 현상이요, 왜 열이 떨어지는가를 아는 것이
바로 학문이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다. 왜 사과가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땅으로 떨어지는가,
여기에서 하나의 이론을 이끌어 내어 이것을 해석하는 것이 바로
학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는 다 법칙이 있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바로 학식있는 사람인 것이다.
오직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우주는 하나의 큰 현상이다. 우주 가운데에는 형형색색, 각양 각색의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 앞에 있는 이러한 현상들을 우리는 모른 체할 수 없다. 우주를 보며 왜 이러한가를 밝히는 것이 바로 학문이다 전 세계의 많은 사상가(思想家)들이 우주가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 내리고 있는 해석은 오직 두 가지뿐, 더 이상은 없다. 이쪽을 믿지 않으려면 저쪽을 믿어야 한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중의 하나를 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해석은 무엇인가? 첫째로
믿을만한 학설(學說)은 우주는 자연적인,
우연한 것이라는 말이다. 또 한 가지 믿을만한 학설은 한 분의,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는 신(神)이 창조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전 세계의 사상가들이 생각하는 두 가지 해석이다. 과연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는 자연
적인, 우연적인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같은 한
분이 창조한 것인가? 당신이 이것을 생각하고 판결을 내리기 바란다.
어떤 것이든 우연한 것에는 반드시 특징이 있다. 당신은 그 특징을
자세하고 세밀하게 써서 그것을 우주의
모든 현상과 대조해 보고 그것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보라. 만일
우주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라면 거기에도 역시 특징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또 하나하나 써서 우주의 각종 현상과
하나하나 대조하여 보라.그러면 정확한 답안이 나을 것이다.
우연한 현상
세상의 모든 우연한 것들에는 어떠한
특징이 있는가? 우리가 아는 모든
우연한 것들에는 조직이 없다. 그것들은 다 부분적으로만 맞을뿐
전체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한 번, 두 번은 우연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번번히 우연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것은
다만 부분적일 뿐 전부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여기에서 의자를 집어서 저 쪽에 던질 때, 그 의자가 쓰러지지 않고
뒤집어지지도 않고 반듯이 선다하자 다시 두 번째 의자를 던질 때
그것도 역시 반듯이 서서 첫 번째 의자 옆에 나란히 선다 하자.
그러나 세번째, 네번째 의자를 던질 때에도 의자마다 다 그 의자
옆에 나란히, 반듯이 서 있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연한 것은 부분적이요, 전체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모든 우연한 것들에는 목적이 없고, 조직이 없고,
조리가 없다. 우연한 것들은 모두 산만하고, 제멋대로 흩어져 있고,
혼란 무쌍하며, 적극적인 의미가 조금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연의 원칙은 조직이 없고, 조리가 없고, 규율이 없고, 목적이 없고,
의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 이제 이 다섯 가지 상태를
여기에 내놓는다
규율과 조직이 있다
이제 우리는 우주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가지고 와서 이 원칙과 대조해 보기로 하자. 먼저 사람을
보자. 사람은 모태(母胎)에 잉태되어,
열 달만에 출생하고, 점점 자라다가, 나중에는 죽는다. 당신이
사람들을 볼 때 한 사람만 그러할 뿐 아니라 두
사람도 그러하고, 세 사람, 네 사람,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하다.
당신은 이 가운데서 일정한 법칙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어지럽고 제멋대로인 것이 아니다. 다시 해를 보자. 고개를 들어
해를 볼 때, 그것이 거기에 목적없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는
목적이 있고 큰 의미가 있다. 다시 달을 보자 또 망원경으로 별을
보자, 어떤 별들은 많은 위성을 갖고 있다 당신은 하늘의 모든
별들에 규율과 조직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운행하는 상태는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계산으로 나온 것이 바로 달력이요 내년의 달력도 이미
그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해 볼 때, 이 모든 것에는
다 규율이 있고, 조직이 있고,
목적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작은 것을 보라
이제 우리는 작은 것을 보기로 하자. 작은
나무 조각을 하나 가져다가 그것을 현미경 아래 두고 그 조직과
조리와 규율을 볼 때 조금도 어지러움이
없다. 나뭇잎이나 꽃잎을 하나 가져다가 자세히 살펴 보라.
그 어느 것 하나도 혼란한 것이 없이 다 조직이
있고, 조리가 있고, 뜻 있다. 이 많은사람, 이 많은 것들이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우주의 모든 것에는 다 조리가 있고,
조직이 있고, 목적이 있고, 뜻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보여 준다
당신은 이것이 우연히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없다.
사람이 살고 있는가 살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나는 동역하는 한 형제와 같이 시골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몹시 목이 말랐다. 그러나 그 길에는 음료수를 파는 곳이 없었고, 샘도 없었고, 인가(人家)도 없었다. 얼마를 더 가다가 우리는 작은 오두막 집을 발견하고 급히 그리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오랫 동안 두드렸으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을사람이 살고 있지 알은 곳으로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마당은 깨끗이 쓸려 있었고, 방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 침대 위에는 이불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참 이상하게도 탁자 위에는 물병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더운 차(茶)가 들어 있었다. 나는 말했다 『이것은 분명히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이 다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증명한다. 우리는 이 차를 마실 수 없다. 빨리 나가자!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와서 우리를 도둑으로 알 것이다. 우린 밖에 나가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보지 않았지만 그 방안의
현상을 볼 때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같이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는
못하지만 우주 가운데 모든 현상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주의 현상은 이와같이
규율이 있고, 조리가 있고, 의의가 있고, 목적이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래도 그것이 우연히 된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나는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성경에 이르기를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만다고 한다』고 말한다 오직 우둔한자만이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계획적인가 우연적인가
이 우주는 분명히 지혜롭고 큰 계획이 있는 한 분이 창조한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만일 당신이 우연한 것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면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다. 셋째 해석은 없다. 당신은 이제 스스로 판단해 보라. 이것이 우연한 것인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일가를.
증인 하나만으로 부족하다면 나는 또
한 증인(證人)을 불러오겠다. 우리
이번에는 사람의 마음을 보기로 하자. 사람의 마음을 보기 전에
우리는 한 가지 현상을 보아야 한다 당신이 아는 바와 같이 사람의
모든 요구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다 예를 들어 한 고아(孤兒)를 보자.그
아이는 한 번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지만 그 속에는 한 가지
자연적인 요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내가 많은 고아들에게 물어 보았지만 그들이 모두 느끼고
있는 그 부족함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서
나오는 요구는 다 대상이 있는 것이다. 다시 예를 들어 말한다면 사람에게는 사회에의 요구가 있고,
친구에 의 요구가 있고, 집단에의
요구가 있다. 어느 외딴 섬에 흔자 사는 사람이 있다.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그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한 가지 요구가 있으니 그것은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얻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바로 이 세상
어딘가에「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어떤 일정한 나 이에 이르면 후대(後代)를 생각하고 자손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에 있을 뿐 아니라 세상에 자손과
후대라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요구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밖에도 그 대상이 있다.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원한다
사회에 대한 요구, 후사(쏟터)에 대한 요구 외에 우리에게는 또 어떤 요구가 있는가? 우리가 볼 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신(神)」을 요구하고 있다. 당신이 볼 때 높은 문화를 가진 백인들에게나, 우리 중국인과 같이 고전(古典)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나, 또 토인(土人)과 같이 문화가 없는 야만인에게도 다 이러한 요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하나님」을 요구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라면 어떤 종족, 어떤 민족을 막론하고 다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다. 이것은 당신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찾고 있으며 도처의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찾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조금 전에 설명한 원칙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 밖의 우주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말해 주는것임을 알수 있다.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다면 반드시 우주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가
있다. 만일 하나님의 존재가 없다면 당신의 마음 속에 이러한
요구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 밥통(胃)이 있다 내가 여기에서 말을 한 마디
지어낸다면 우리에게는 또한 「하나님통」이 있다. 음식 없이는
밥통이 견디지 못하듯이 하나님 없이는 하나님통이 견디지 못한다
한 번도 하나님을 생각한
적이 없었는가
언젠가 무신론자인 친구 한 사람이
아주 무례한 태도로 큰 소리로 내게
말했다. 『자넨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다고
말했지만 난 그렇지 않아! 나는 믿지 않아!』 나는, 『좋아, 내가
자네에게 묻겠는데 자네가 일 년 동안에
한번도 하나님을 생각한 적이 없었나? 솔직히 말해서 자네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 그 때에도 자네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닌가? 그게 바로 자네에게 하나님을 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야.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어. 다만, 자기 자신이 생각을 억제할
뿐이지 자네 안에 그런 생각이 있는 것은 분명 자네 밖에 그러한
대상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마음의 생각과 다르게 말한다
언젠가 한 청년이 나에게 와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서 말할 때, 그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 반대는 매우 강경한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없다는
이유를 첫째, 둘째, 세째 등등으로 많이 들었다 나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말을 들은 후 그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없다는 이 많은 이유를 자네가 내놓고 있지만 자넨 진
걸세.』 그는 왜냐고 물었다. 나는, 『자네 입으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지만 자네 마음은 여전히 나와 한 편일세.』라고 말했다.
그 후 그는 비록 입으로는 많은 이유를 들었지만 확실히 마음
속에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교만한 사람은 입으로 천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지만 당신은 그에게,『네
자신 속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태여 밖에서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위급할 때 하나님을 찾는다
남미주(南美洲)에서 전도를 하는 어느 전도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숲 속에서 몇몇 사람들이 듣고 있는 가운데 강연을 하고 있는 한사람을 보았다 그가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사람은 기세 등등하여 하나님이 없다는 데 대하여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는 한 가지, 두 가지, 세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목에 핏대를 올리며 계속 십여 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반박할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시오!』라고 했다. 얼마가 지났으나 아무도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전도인은 생각했다. 『전도인인 내가올라가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일어나 청중에게 말했다 『친구 여러분. 나는 그렇게 많은 이유들을 말할 줄 모릅니다. 나는 다만 한 가지 사실을, 한 가지 실화(實話)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제 나는 큰 강의 강변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강은 위가 높고 아래는 낮아서 물살이 매우 빨랐습니다. 좀 더 내려가 보니 그것은 하나의 큰 폭포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빠지기만 하면 그 누구도 살 수 없을 그런 폭포였습니다. 어제 나는 이 강가 가까이 걷고 있다가 어떤 사람이 지르는 큰 비명을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분명히 그가, 『하나님, 살려 주십시요! 하나님, 살려 주십시요!』라고 외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빨리 소리나는 곳으로 찾아가 보니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폭포 쪽으로 떠내려 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를 구하러 강에 뛰어 들었습니다. 물살은 너무도 셌습니다. 다행히 내게 힘이 있어, 나는 한 손으로 그를 붙잡고 한 손으로는 힘을 다해 헤엄을 치며 그를 강가로 건져 올렸습니다. 이 일을 하고 나니 내 마음은 참 기뻤습니다. 물 속에 빠졌을 때 큰 소리로, 『하나님 살려 주십시요! 하나님, 살려 주십시요!』라고 한 그분을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할까요? 그분은 방금 강연하신 저 선생입니다. 어제는 큰 소리로, 「하나님,살려 주십시요!」하고 외치던 그 사람이 오늘은 십여 가지 이유를 대면서 하나님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 다 바로 이 사람이 무신론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는 다 이면적(裏面的)인
문제다. 어제 생명이 위험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구했지만, 오늘 생명이 위험하지
않을 때에는 이유를 대면서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이 계심을 아는 데에는 문제가 조금도 없다
그것은 바로 여러 속에 하나님을 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속에는 하나님을 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수
있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객관적인 현상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을 보기로 하자.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에 확답을 주시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이 이렇게 대담하게 말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나는 이어서 또 말했다. 『사람이 알고 있는 인류의 역사(歷史)만 해도 약 오륙천년입니다. 오륙천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지 모릅니다.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했던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독교 가운데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 아닌 다른 종교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많은 세월 동안 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한 이 많은 기도를 하나님이 한 번도 듣지 않으시고 응답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당신이 증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너무나도 큰 이 사실을 단번에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들이 하늘에 구한 것들 가운데서 한 가지도 응답이 없었다고 당신이 말할 수 있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응답이 있었을 뿐 아니라, 셀 수도 없는 응답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의 응답만으로도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기도의 응답이 정말 한 번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정말 당신은 기도의 응답이 다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정말 당신은 모든 기도의 응답이 다 가짜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도, 적어도 이 삼 천 번 기도의 응답이 있었는데, 이것이 모두 우연이란 말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허다한 기도의 응답을, 당신은 모두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느 날 한 전도인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널 때였다. 홀연히 바다에 짙은 안개가 끼어 배가 더 가지 못하고
바다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전도인은 선장에게,
『항해하십시오. 나는 화요일에 런던에서 설교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선장이 말했다. 『선생님께서도 이 짙은
안개를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배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기도를 해서 안개가 사라지게 한다면 내가 계속
항해를 하지요.』 전도인은 말했다 『좋습니다. 내가 여기서 기도를
할테니 당신은 항해를 계속하십시오. 여기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는 기도를 시작했고 선장은 항해를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기도하고 한 쪽에서는 항해했다. 항해를 시작하자
안개가 사라졌고 배는 예정되었던 시각에 도착했다. 이것이 우연 인가?
기도를 듣는 참 하나님
나는 어느 날 몇 형제들과 함께
시골로 전도하러 갔었다 그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신(神)이 가장 뛰어난 신이다. 우리의
신은 대왕(大王)이다. 우리의 대왕은 해마다 한 번씩 거리에 출동
(우상을 메고 행진하는 것)하는데 출동할 때마다
날이 맑았다 지금까지 맑지 않은 날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얻어, 『내일 대왕이 출동할 때에는
반드시 비가 올 것이다.』 라고 말하고 돌아와 하나님께 비를 오게 하시기를
기도했다 이튿날 참말 대왕이 10시에 출동하는데 9시부터 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니 대왕은 나오지 못했다
그들은 의논을 한 후에, 『출동하는 날짜를 잘못 계산했다. 진짜
출동일은 14일이지 11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말했다.『14일에도
반드시 비가 올 것이다.』 우리는 돌아와 또 기도했다 참으로 14일에도
또 비가 왔다. 그들은 억지로 대왕을 메고 나와 행진을 하다가 메고
가던 사람들이 하나 하나
미끄러져 다리를 삐었고 대왕도 넘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러한 일까지도 우연히 된 것인가? 이런 일들은 너무도 많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경험 중 약간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기도의 응답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을 다 내놓는다면
얼마나 많을지 모른다. 이러한 기도의 응답이 바로 하나님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부쳐 온 물건
어렸을 때 나의 생각은 매우
야만적이어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이
있다는 것 조차도 믿지 않았다. 미국의 지도(地圖)는 보았으면서도
미국이라는 지방(地方)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언젠가
나의 아버지께서 미국에 돈을 보내어 물건을 사신적이 있다 나는 그
때 구두 한 켤레와 장난감 배 하나를 주문했다.
아버지께서 우체국에서 소포를 가지고 오시어 그
속의 구두와 장난감을 나에게
주셨을 때 나는 비로소 미국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미국에 갔을 때 특별히 그 백화점 입구에 가서 그 백화점을 가리키며 내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나로 하여금 미국이 있다는 것을 믿게 한 곳이지.』 여러분이 하나님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나는 기도의
응답을 받은 사실들을 여러분 앞에 내어 놓았다. 어쨌든 여러분은
하나님이 없다고 담대히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기도의 응답을 받은
이러한 일들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도로 하나님을 접촉함
언젠가 내가 연경대학의 한 학생을
만났을 때, 그 학생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중학교에 다닐 때,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학에 들어온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자연히
발생된 것이요, 우주는 우연히 생긴 것이다. 하나님이 과연 있단
말이냐?」고 말하는 데서 저는 혼돈되었습니다. 이 몇 개월 동안 이
문제는 계속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 속에서 저는 어쨌든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저는 먼저 우연히 발생되었
다는 설(說)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우연히 생겼고, 세계가 우연히 생겼고, 우주가 우연히 생겼다고?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후 저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어 다만 무릎을 끓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과연 당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나는 모르겠습니다.
생각할수록 나는 혼돈이 됩니다. 당신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마치고 약 이주일이 지난 후 나는 모든
것이 우연히 발생되었다는 설(說)을 믿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제가 확실히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 주셨기 때문에 제가 이 문제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된 것 입니다. 』 이것도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 한 예(例)이다. 나는 하나님과
친숙해지면서 여러 차례 하나님께 매달렸고 많은 관계를 하나님과
맺었다. 이것은 오직 여러분이 하나님과 부딪혀 봐야만 알수 있는
것이다.
진중한 판단
친구들이여,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말하겠는가? 여러분은 이 대자연을 보았고, 우주를 보았고, 자기 안의 느낌을 접촉했고, 많은 사람의 경험도 들었다. 과연 하나님이 있는가 없는가를 여러분 자신이 판단해 보라. 그러나 여러분이 책임을 피할 수 없고 태도를 함부로 할 수 없음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드러날 것이고,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는 그 날에는 모두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준비할 때는 오늘이다 우리는 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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